20일 오후 서울 도봉구 방학천. 오리들이 부리로 진흙을 헤집어 벌레를 잡아먹고 있었다. 평화롭기만 한 이곳에서 지난 13일 오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남성 2명이 돌팔매질을 해 오리가 죽은 것이다. 남성들은 어미 오리 1마리와 새끼 오리 5마리를 향해 약 1m 거리에서 하천에 있는 주먹 크기의 돌을 십수 차례 던졌고 그중 한 마리가 맞아 죽었다는 게 목격자의 증언이다. (관련기사)
(출처 : 중앙일보)
문제의 남성들은 범행 직후 검은색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달아났다고 한다. 이들을 목격한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했고, 담당 수사관이 자수를 권유하는 안내문을 하천 인근에 배포하면서 사건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방학천을 방문한 이들은 방학천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던 오리의 죽음에 안쓰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도봉구에서 20년 거주한 임모(73)씨는 “10년 전 방학천이 복원된 뒤 한 마리 두 마리씩 오리들이 찾아오더니 새끼를 낳았다”며 “사람이 지나가도 도망가지도 않고 이쁘게 생긴 게 참 신통했는데 왜 죽였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주민 백모(30)씨는 “오리 한 쌍이 새끼 10마리를 뒤에 달고 다녔다. 산책할 때마다 오며 가며 사진을 찍곤 했다”고 말 했다.
오리 학대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문제의 남성들은 지난 16일에도 방학천에 와 오리 떼를 향해 돌팔매질을 했고 이번에는 새끼 오리가 돌에 맞았다고 한다. 오리는 목이 꺾여 얼굴이 물에 처박혔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보는 눈이 많았지만, 피의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게 주민들의 증언이다. 담당 수사관은 “특히 16일에는 주변에 어르신들이 많아서 말리는 분이 한두 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돌팔매질을 해서 추가 신고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경찰이 피의자로 지목한 이들은 17일 오후 또다시 방학천에 나타나 벽에다 표시를 하고 돌로 표적을 맞히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이를 목격한 인근 주민이 경찰에 신고했으나 달아났다. 도봉서 지능범죄수사팀 담당 수사관은 “막연하게 ‘돌멩이로 오리를 맞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야구 선수가 공을 던지듯이 풀스윙으로 돌을 던졌다”며 “범행이 반복되고 있는 데다 무자비하게 던진 만큼 죽은 오리들이 더 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담당 수사관은 하천을 따라 CCTV를 차례대로 분석하며 피의자들의 도주 경로를 조사하고 있다.
피의자들이 검거되면 경찰은 이들에게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법률에 따르면 ‘때리거나 산채로 태우는 등’의 방식으로 야생생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동물보호법상의 처벌 규정과 법정형이 같다.
그러나, 실제 형량은 대부분 벌금형이다. 지난해 ‘고어전문방’으로 불리는 동물 학대 전시 대화방 운영자는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지난 3월에는 ‘제2의 고어전문방’이 등장하면서 약한 처벌을 재발 원인으로 지목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권유림 동변(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변호사는 “반복되는 동물 학대 근절을 위해서는 수사기관의 엄정한 수사와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형량은 강화됐지만, 선고형이 강화되진 않고 있다. 사법 기관에서 판례에 기반한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판결이 아니라 선도적인 판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