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헌재)는 2019년 낙태 수술을 한 임산부, 의료진을 처벌하는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법 조항은 2020년 말 효력을 상실했고, 국회는 3년째 '대체입법'을 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법적으로는 제한 없이 낙태를 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내 산부인과들은 '입법공백' 상태에서 사회적 비판을 우려해 낙태 수술을 꺼리고 있다. 미국에서 '임신중지권'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임신중지권에 대한 입법공백 상태를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관련기사)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24일(현지시각) '로 대 웨이드' 판례(1973)를 폐기했다. 헌법에 적힌 '사생활의 자유'라며 22~24주까지 임신중지를 보장해 준 판례다.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가 헌법상 권리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은 순식간에 두 동강 났다. 판결을 지지하는 공화당 우세 지역 상당수에서는 낙태 금지 조치가 즉각 단행됐다. 민주당 우세 지역은 '낙태권 보호지역'을 선포했다.
한국은 2019년 낙태한 여성과 의료인을 처벌하는 형법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이 헌재에서 내려졌다. 판단은 미 연방대법원과 정반대였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양상은 같았다. 헌재는 2020년 12월31일까지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도록 주문했지만 낙태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 탓에 국회는 대체입법을 하지 못하고 있다. 헌재 관계자는 "헌법불합치가 이후 대체입법이 되지 않아 처벌 조항 효력이 상실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헌재 결정이 나온 이듬해 임신 14주까지 낙태는 전면 허용, 14~24주는 사회적, 경제적 이유가 있어야 허용한다는 개정안을 냈다. 정부안 외에도 낙태 완전 허용 법안, 10주 허용 법안 등이 발의됐다. 하지만 '허용 기간'을 두고 견해 차가 좁혀지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3월 정부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하려 했다. 하지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막혀 실패했다.
관련 법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선 임신기간과 관련 없이 낙태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제한 없이 낙태를 할 수 있는 셈이다. 마포구의 한 산부인과는 "지금으로선 낙태가 합법"이라며 "법적으로만 본다면 임신기간과 관계 없이 다 가능하다"고 했다.
완벽한 법이 아니라도 일단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일랜드를 예로 들었다. 아일랜드는 임신 12주까지만 낙태를 허용하는 제한적 법을 2020년 통과시켰다. 김 연구위원이 아일랜드 의원에게 이유를 묻자 "이렇게라도 안하면 법이 언제 만들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김 연구위원은 "아일랜드는 입법 과정에서 '3년 뒤 법을 개정하자'고 약속했다"며 "우리도 완벽한 법을 찾으면 양쪽이 계속 줄다리기를 할 수밖에 없다. 적당한 선에서 법을 만들지 않으면 낙태, 약물 도입 모두 어려울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