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사이에서 ‘생일 기부’ 문화가 퍼지고 있다. 생일을 앞두고 SNS에 기부하고 싶은 단체에 대한 소개 글과 해당 기부처를 선택한 이유 등을 밝히는 식이다. 이후 생일날 모은 돈으로 기부한 뒤 내역을 공개하는 것으로 생일선물을 대체하는 것이다.(관련기사)
회사원 정모(25)씨는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선물을 맡겨놓은 것도 아닌데 먼저 생일을 알리는 게 주저되기도 했다고 한다. 걱정과 달리 정씨는 이번 생일, 예년보다 더 많은 축하를 받았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거나 평소 생일을 챙겨주지 않던 친구들도 기부를 계기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 왔다. 45명의 친구가 십시일반 보낸 돈은 88만원이었다. 정씨는 여기에 자신의 돈 12만원을 보태 동물권 단체에 100만원을 기부했다.
정씨는 “나 때문에 물건이 생기고 버려지는 게 싫어 생일 기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가 보편화하면서 정씨의 생일 때마다 엄청난 택배 쓰레기가 나왔고, 인테리어 용품처럼 필요하지 않은 걸 선물 받으면 그 또한 쓰레기가 됐다. 처음으로 쓰레기 없이 맞은 이번 생일에 정씨는 “그 어느 생일보다 걱정 없이 기쁘고 뿌듯했으며 순수하게 행복했다”고 말한다.
영미권을 중심으로 ‘생일 기부(Birthday Fundraising)’는 보편적인 문화다. 이런 움직임이 한국으로 유입돼 확산하는 추세다. 실제로 기부자들은 책 『연필 하나로 가슴 뛰는 세계를 만나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등에 소개된 해외 사례를 통해 생일 기부의 개념을 처음 접했다고 말했다. 기부자들은 목표한 금액이 안 모일까, 혹은 맡겨놓은 것처럼 보일까 걱정도 컸지만 ‘신선하고 기분 좋은 선물’이라거나 ‘동참시켜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684만원. 군 복무 중인 권순호(24)씨가 성인이 된 뒤 진행한 6번의 생일 모금을 통해 모은 돈이다. 기부처는 해양 환경단체부터 우간다 보육원까지 매년 다양하다. 그는 “돈을 버는 것을 넘어 가치 있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고, 누군가를 돕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권씨는 "대부분 사람이 기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디에 해야 할지는 몰라서 그런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친구들로부터 ‘이런 기회를 만들어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말한다. 권씨를 따라 생일 기부를 선택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권씨는 "선의의 도미노란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
권씨는 벌써 다음 생일의 기부처를 고민하고 있다. 공군에 복무 중인 그는 지난해 자살예방 전담 교관의 강의를 들으며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지난해 생일엔 한국 생명의 전화에 50명이 보낸 189만원을 기부했다. 올해는 노인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단체인 코리아레거시커미티에 133만원을 기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그는 “매년 기부처를 골라야 하니까 우연히 마주친 사회적 이슈에 더 경청하고 공부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기부 문화 확산에 발맞춰 단체들도 ‘생일 기부’에 특화된 기능들을 내놓고 있다. 당사자가 직접 돈을 모아 한 번에 기부하는 대신 생일 기부 링크를 생성해 공유하면 개개인이 단체에 모금하는 식이다. ‘이벤트 기부’ 기능을 제공하는 사단법인 더브릿지 관계자는 “MZ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한 달에 몇만 원 정기 기부’와 같은 수동적 기부보다 1000원을 쓰더라도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기부를 하고 싶은 의지가 강하다”며 “선한 영향력을 더 재미있고 적극적으로 확산시키고 싶어하는 MZ세대들의 특성을 반영해서 비영리단체들도 생일 기부 기능을 만드는 추세”라고 말했다.